에세이 / 칼럼

피아니스트 엄마 안미정 칼럼_하얀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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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이슬
가을다운 기운이 더하여 밤새운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날, ‘백로(白露)’가 다가올수록 오곡백과가 무르익습니다. 방울방울 맺힌 이슬을 바라보며 맞이하는 아침 풍경은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1번의 첫 번째 곡 “아침의 기분 ”을 들으며 위의 장면을 바라본다면 더욱 황홀할 것만 같습니다.

“Morning Mood” from <Peer Gynt> Suite No. 1, Op.46 by Edvard Grieg, 1843~1907



한국인들의 귀에 익숙한 이 곡은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 (Henrik Ibsen, 1828~1906)의 연극 <페르 귄트, 1867>에 그리그가 곡을 붙인 것에서 유래합니다. 특히 이 “아침의 기분”은 ‘허황된 것을 쫓으며 거짓말에 능통한 주인공 페르’가 모로코 해안에 도착하여 바라본 풍경과 아침 기분을 묘사한 곡인데요, 몽상적인 플루트의 단선율로 아침의 정적을 깨우는 도입부가 아침의 정적을 일깨우는 역설로 표현되어 매우 압도적입니다. 이렇게 도입부에서 제시된 인상 깊은 모티브는 곡이 흘러갈수록 큰 진폭의 소리패턴을 만들어 나갑니다. 이슬이 한 방울이 맺혀 떨어지는 압도적인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선 뜨겁게 달구어진 낮의 복사열과 급격히 식은 밤의 서늘함이라는 큰 진폭의 온도패턴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결실과 수확의 계절 가을이 다가옵니다. 당신은 한 방울의 이슬을 맺히게 할 어떤 진폭을 가지고 있나요? 무작정 미지근하기만 하다면 평생 하얀 이슬을 만들어 낼 기회를 놓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불같이 뜨겁고 때로는 얼음같이 차가운 삶 속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며 영롱하게 빛나는 당신만의 이슬을 맺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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