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칼럼

권혁인 목사 칼럼 - 시편 묵상(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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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신비롭고 웅장한 선율 처럼, 모든 피조세계를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은 경이로운 감탄으로 이어집니다. 고대인들에게 하늘과 해와 달 그리고 별과 같이 저너머 세계 에서 신비하게 존재하는 것들은 늘 경외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동경의 대상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자연의 신비도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부일 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경배의 대상 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신 유대의 율법에 대한 이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는 모형이자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주장대로 율법을 실천한다고 해서 인간이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온전하신 예수를 믿지 않고는 불가능한 구속의 역사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노력으로 취하는 결실이 아니라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의롭다 여겨주실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장엄하고 웅장한 자연 세계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율법도 하나님 안에서 그의 뜻대로 적용될 때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믿음은 보이는 경관이나 율법의 규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만 향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것을 더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아닌가?


권혁인 목사 (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408-295-4161
https://www.santaclarakum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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